9월 22일부터 나흘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의 퀘일할로골프클럽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은 192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과 유럽의 팀 매치인 라이더컵과는 양상이 다른 이벤트다. 라이더컵이 필사의 전투이자 적을 짓눌러야만 살아남는 생존 게임이라면, 프레지던츠컵은 져도 기분 나쁘지 않은 신사들의 게임에 가깝다.
라이더컵은 2년마다 유럽과 미국의 골프 자존심을 놓고 싸우며 막상막하 승부가 됐다. 하지만 이는 1977년까지 미국과 영국·아일랜드에서 미국이 10번 연속 승리한 후 1979년부터 바뀐 방식이라서 가능했다. 미국과 유럽으로 전장을 확대한 뒤로는 21번 겨뤘는데 유럽이 11승 9패 1무를 기록하고 있다. 1927년 시작된 라이더컵에서 영국-아일랜드팀은 50년간 미국과 22번 싸워 3승 18패 1무의 전적을 가졌다.
오늘날의 라이더컵은 미국에서 열리면 미국팀이 우세하다. 유럽에서 열리면 유럽 전역이 한 팀으로 똘똘 뭉쳐서 응원해 유럽팀이 우세한 결과가 나온다. 팬들 역시 선수이상으로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쟁투가 되면서,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대회를 여는 주최도 미국에서 열리면 미국프로골프PGA투어가 주관하지만 유럽에서 열리면 DP월드(유러피언)투어가 주관한다.
프레지던츠컵은 라이더컵의 성공 방정식을 보고, 미국PGA투어가 대회 포맷을 차용해 1994년에 만들었다. 미국 대통령 경제보좌관 출신의 티머시 핀첨Timothy W. Finchem 미국PGA투어 커미셔너가 그해 6월 임기를 시작하면서 야심 차게 만든 이 대회는 첫해부터 제럴드 포드Gerald Ford 미국 전 대통령을 명예의장으로 초빙하는 등 품위를 갖춰 시작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게인스빌의 로버트트렌트존스Robert Trent Jones골프장에서 9월 16일부터 사흘간 열린 첫 대회는 실력 차가 컸다. 가장 강력한 선수였던 ‘백상어’ 그렉 노먼(호주)이 부상으로 대회 며칠 전에 기권하면서 격차는 더 벌어졌다. 급히 대체된 선수 브래들리 휴즈(호주)는 1승 3패의 졸전으로 미국팀이 인터내셔널팀에 20대12로 압승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2년 뒤인 1996년 2회 대회도 미국PGA투어가 주도하며 같은 코스에서 대회가 열렸다. 다만 2회째는 당시 임기 중이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명예의장을 맡았다. 이때는 당시 세계 1위이던 노먼도 출전했고, 어니 엘스(남아공)도 있어서 해볼 만했다. 그나마 성적이 비슷해서 16.5대15.5로 인터내셔널팀이 아슬아슬하게 졌다.
유럽을 제외한 국제연합 국가로 팀을 꾸리다 보니 출전 선수들의 언어 장벽이 최대 단점으로 떠올랐다. 캐나다, 호주, 남아공 등 영어권 국가는 상관없지만 한국, 일본, 태국 등 아시아와 남미 선수들은 팀원이 된다 해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게 큰 문제였다. 자신의 볼을 치면서 그중에 좋은 스코어를 적어 내는 포볼Four-ball 경기에서는 자신의 경기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2인 1조가 하나의 공을 번갈아 치는 포섬Foursomes 경기의 교대 샷Alternate Shot 방식에서는 홀마다 팀원 간의 의사 소통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언어가 다른 인터내셔널팀은 애를 먹었다.
이후 미국PGA투어는 대회장을 호주로 옮기거나, 대회 방식을 8번에 걸쳐 변경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며 프레지던츠컵을 더 짜릿한 승부의 무대로 만들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적을 보면 미국이 11승 1무 1패로 압도적인 우세다. 미국과 유럽 대륙 선수들은 비슷한 기량이지만 인터내셔널팀이 세계 골프 랭킹에서나 기량에서 차이가 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미국PGA투어는 미국 대회뿐만 아니라 해외 연합국에서 열리는 대회 방식까지 주관한다. 개최국의 골프협회나 아시안투어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일방적인 결과가 나오는 건 어쩌면 예정된 일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라이더컵만큼 흥미진진한 대회가 되려면 연합국에서 열릴 때는 현지 골프협회에서 맡아 대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아공, 호주, 한국, 캐나다 등 역대 개최국의 프로골프협회가 미미해서 그 또한 쉬운 선택이 아니다.
2015년 아시아 대륙으로는 처음으로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코리아에서 열린 대회에서 관중들은 미국팀 선수가 멋진 샷을 하거나 퍼트를 성공해도 박수와 환호 갈채를 보냈고, 인터내셔널팀이 잘해도 박수를 보냈다. 갤러리들이 속해 있는 대륙의한 팀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들의 멋진 퍼포먼스에 박수를 보내고 경기를 즐겼다. 그나마 호주에서 온 열광적인 팬클럽인 퍼내틱Fanatics만 인터내셔널팀을 과하게 응원하고 미국팀에 야유를 보내는 진정한 팬심을 보였다.
그러니 프레지던츠컵이 라이더컵과는 애초 출발점부터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올해 역시 미국팀의 일방적인 경기로 흐를 확률이 높다. 2년 뒤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전해도 미국팀이 우승할 것이다. 다만 라이더컵과 달리 더 신사적이다. 늑대와 개 싸움처럼 악의적으로 상대방을 헐뜯는 치열함은 없지만, 스타급 선수들이 멋진 샷을 보이고 세계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된다. 거기다 다양한 이벤트를 넣어 나라마다의 골프 문화와 수준에 맞게 전파하면 그걸로 족하다.
결국 프레지던츠컵은 골프의 외연을 확장하고 이머징 마켓으로 진출하는 데 목적이있다. 세계 상위권을 휩쓰는 미국 선수들을 위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증명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그에 맞설 신생국 차세대 스타들을 미리 확인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올해 갑자기 등장해서 엄청난 돈을 뿌려대는 리브골프에서 하고 싶은 게 바로 이런 대회일 것이다.
프레지던츠컵을 통해 역대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나와 사이좋게 관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다. 올해 명예의장은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이다. 2017년 명예의장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회장에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그는 리브골프가 열리는 두 곳의 골프장 오너다.
버락 오바마와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17년 미국 리버티내셔널에서 열린 제12회 대회에서 함께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퇴임한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골프가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스포츠임을 그보다 잘 나타낸 장면은 없었다.
말 그대로 ‘대통령’컵 Real Presidents Showing
프레지던츠컵을 처음 기획한 핀첨 미국PGA투어 전 커미셔너는 1994년 첫 대회에 제럴드 포드 전 미국 대통령을 명예의장으로 초빙한 이후 매번 개최국 대통령이 명예의장 Honorary Chairperson을 맡도록 대회를 설계했다. 미국에서는 조지 H. W. 부시(1996년), 빌 클린턴(2000년), 조지 W. 부시(2005년), 버락 오바마(2009, 2013년), 도널드 트럼프(2017년)에 이어 올해 조 바이든까지 7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명예의장을 맡았다.
해외에서 열릴 때도 개최국 대통령이 흔쾌히 명예대회장을 맡았다. 2003년 남아공에서 열린 대회의 명예회장은 타보 음베키 남아공 대통령이었다. 2011년과 2015년의 명예의장이던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골프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명예의장직을 맡았다.
2015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가진 개막식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개회사를 했다. 대회 첫날 경기를 시작할 때 부시는 티잉 구역에 올
라 어느 팀이 먼저 티 샷을 할지 결정하는 ‘동전 던지기’를 주재했다. 부시는 둘째 날인 9일에도 티잉 구역에 올라 필 미컬슨과 프리허그도 하고 마지막 조가 티 샷을 마치고 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2019년에는 좀 아쉬웠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조차 대회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었고, 재선을 앞둔 터여서 백악관을 비울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자 모리슨 총리도 대회 내내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나한 커미셔너는 전 미국 대통령들에게도 타진했으나 모두 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