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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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나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기억을 더듬어 내 인생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다만, 일부 연도나 세부 사항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어린 시절, 우리는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놀이, 팽이 돌리기, 오징어 연 날리기를 즐겼습니다. 그때의 놀이들이 어린이들에게는 소중한 순간이었죠. 그리고 뻥튀기 장수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몰려가던 모습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 식목일이 되자 학교에서 무궁화 꽃 묘목을 한 그루씩 나눠 주었습니다. 저는 그 묘목을 집 담장 옆에 심었죠. 하지만 그 해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이 흔들렸습니다.
부모님께서 피난을 가야 한다며 짐을 싸라고 하셨고, 저와 두 누나, 형, 동생, 이렇게 다섯 남매는 인천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화물선을 타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부산에서의 피난 생활은 어려웠습니다. 작은 단칸방에서 가족이 함께 생활해야 했죠. 전쟁이 끝난 1953년,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와 청파동의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피난 중에는 수송국민학교 분교를 다녔고, 서울로 돌아온 후 다시 본교로 입학했습니다.
학교는 광화문 옆에 있어, 청파동에서 전차나 버스를 타고 등교하곤 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난로 위에 올려놓아 따뜻하게 먹었는데, 김치가 들어간 도시락을 꺼낼 때마다 진한 김치 냄새가 퍼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최고의 반찬은 계란말이였고, 친구들이 도시락을 열 때마다 그들의 반찬을 보고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우리 도시락에는 주로 콩자반과 멸치조림이 들어 있었습니다.
1955년, 국민학교 6학년이었을 때, 형님께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한 후, 한미 배를 타고 미국으로 출국하셨죠. 형님을 배웅하며 어린 마음에 ‘나도 꼭 미국으로 유학 가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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